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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 철의 삼각지와 더불어 격전지였던 곳,
김신조 外 30명의 무장공비의 침투가 있었던 곳,
그리고 남침땅굴의 징후가 최초로 포착돼 수색 중이던 곳,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분단의 상처가 깊은 그곳에
총알 자국 선명한 비석을 선봉장 삼아, 철책과 지뢰를 호위무장 삼아
1300여 년 전 한반도를 통일했던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잠들어 있다.

외세의 침략으로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 천년 사직을 고려에 넘겨주고
왕위를 물러나 죽기 직전까지 옛 신라의 도읍, 경주를 그리워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그러나... 망국의 왕은 죽어서도 고향에 가지 못한다.

한반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번의 실전을 겪은 '경순왕릉',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 경주가 아닌 고랑포에 묻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130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고랑포에 서린 비운의 왕의 恨을 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