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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좋은날
방송일시 매일 오전 9시~11시
진행 강민주
구성 김지은
나의 아내 효숙씨
작성자 :조준석
등록일 :2012-09-25
조회수 :854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원주에서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 엄청 더웠잖아요. 그런데 유난히 공사가 많아서 안 그래도 더운 여름을 더 고되게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된 게 바로 이 예감좋은날이에요.
기다리기도 적적 하고 해서 우연히 주파수를 돌리다가 명랑한 목소리가 귀에 들어와 듣기 시작했고요 저와 함께 일하는 기사님들 모두 여름 내내 방송을 들었습니다.
가끔 문자만 보냈는데, 이렇게 긴 사연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딸내미에게 부탁해 회원가입을 했어요.
중학생 딸내미가 그러더군요. 늙은 나이에 주책이라고.
컴퓨터라고는 고스톱이랑 채팅밖에 모르던 아빠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니 지도 많이 웃긴가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연을 올리는 이유는 얼마 전 친정어머니를 떠나보낸 저희 아내 때문입니다.
장모님은 칠순의 연세에 돌아가셨는데
지금이야 애를 한 둘만 낳지만 옛날에는 오남매는 기본이었잖아요. 저도 육남매 중 둘째에요.
근데 저희 아내는 유일한 외동딸입니다.
살아생전 장모님이 종종 말씀하시길, 아들을 못 낳아서 시어머니의 구박을 많이 받으셨대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워낙 몸이 약하시고 자궁에 문제가 있으셔서 아내를 낳고 나서는 잉태를 하고 싶으셔도 못하셨더군요.
그래서 단 하나뿐인 외동딸이라 참 끔찍이 아끼셨습니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도 장인어른보다 장모님이 어찌나 무섭던지..또 현장에서 일하는 제 직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는데,
그래도 내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니 그걸로 됐다. 하실 정도였죠.
장인어른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고, 저희가 모시고자 했으나 혹시 딸에게 부담이 될까 끝끝내 혼자 지내셨어요.
아내는 그것이 마음이 걸렸던지
하루에도 몇 번씩 장모님께 전화를 하고, 문지방이 닳도록 장모님을 살뜰히 챙겼어요. 그러다 장모님께 당뇨가 왔습니다.
음식 관리만 잘하면 질병이라고 하지만, 연세든 어르신께 당뇨가 오고 나니 그게 꼭 사망선고 같더군요. 아내에게 있어 장모님이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내가 늘 그랬거든요.
엄마마저 돌아가시면 난 피붙이 하나 없는 고아가 된다고요.
저 또한 어머니 없이 커서 장모님을 어머님처럼 모시고 살았습니다.
결국 저희는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과 상의 끝에
어머님을 저희 집으로 모셔오기로 했습니다. 싫다는 장모님을 거의 끌고 오다시피 했어요.
워낙 조용하신 분이고 그게 딸이라도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격이신지라,
저희와 함께 사시면서도 늘 조심하시고 불편해하셨습니다. 그렇게 1년을 사셨을까요.
어느 날 저희를 다 불러 모아놓고 통장 하나를 내놓으시니
아버지가 남겨놓고 간 건데 반절은 너희에게 주고 반절은 요양원비로 쓰겠다고 하시더군요.
하나뿐인 딸을 끝내 불효녀로 만들 거냐며 아내는 펑펑 울었지만,
끝끝내 장모님은 스스로 요양원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두 달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임종은 저희가 모두 지켜봤고, 당뇨 합병증이 원인이었어요.
가시는 그 순간까지 참 조용히 가셨어요. 어머님 명의로 돼있던 집을 처분하고 물건을 정리하면서 아내는 몇날 며칠을 눈물로 지샜습니다.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고 아이들 등교도 못 챙겨줄 정도였죠. 한 달 사이에 몸무게가 8키로나 빠졌고, 이러다 이 사람도 따라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저희 누나들을 번갈아 와서 아내를 돌보고,
저희 아버지는 이러다 정말 며느리까지 보내겠다며 아직도 하루에 한 번씩 안부전화를 하십니다.
그래도 두 달째 되니 이제 좀 나아지고 있어요.
아이들을 보며 웃기도 하고, 그제는 명절 준비를 한다고 형수님이랑 마트도 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며 저도 마음을 놉니다.
아내가 얼른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엄마는 강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린 엄마는 참 약하다는 생각을 아내를 보며 하게 됐어요.
당뇨 발병 후에 장모님이 늘 부탁하셨던 게 있으셨어요. 혹시라도 내가 죽게 되면 우리 딸 잘 부탁한다고..자네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지어줘서 참 미안하지만
그 은혜는 하늘에서도 다 갚을 테니 오래오래 건강하면서 딸을 지켜달라고 하셨어요.
아내는 이 사실을 모르지만 저에게 따로 챙겨주신 통장이 있으셨죠. 아무도 주지 말고 이 돈으로는 자네 보약도 지어먹고 제때 제때 건강검진도 잘 받으라고.
아무래도 아내보다 더 먼저 세상을 떠나지 말라는 당부 같으셨어요.
넋두리를 늘어놓다 보니 훌쩍 한 시간이 지났네요. 곱고 단정하셨던 장모님이 참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얼른 기운을 차려서 예전처럼 함께 소주도 한잔 기울이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희수엄마~ 박효숙씨! 참 사랑하오. 당신의 웃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소.
- 사랑하는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신청곡도 해도 되는거면 이미자나 조용필의 노래로 들려주세요
장모님이랑 아내가 좋아했던 곡이에요.
선물은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위해 호텔 이용권 주시면 감사하ㅔㅆ큽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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