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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좋은날
방송일시 매일 오전 9시~11시
진행 강민주
구성 김지은
편지가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께 보내요.
작성자 :김미선
등록일 :2012-06-26
조회수 :717
저는 올해 서른다섯 살의
남들이 흔히 말하는 결혼적령기를 놓친 ‘노처녀’입니다.
춘천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아침 오픈을 준비하며 종종 듣고 예감좋은날에 사연을 보내게 된 건, 바로 저희 아버지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른 부녀지간처럼 친하지도 않고요
심지어 저는 살면서 ‘아빠’란 말을 써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핸드폰에 아버지란 세 글자가 뜨면 심장부터 두근거립니다.
참 무섭고 엄한 아버지셨어요.
집에 딸이 셋인데 저희 자매들에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마냥 무섭고 같이 있으면 불편하고 그런 존재거든요.
왜 그렇게 된 걸까 .. 이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아마 부모님의 이혼 탓이 큰 것 같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거든요.
사실 당시 속상함 보단 후련함이 더 컸습니다.
다신 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볼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저희 세 자매 모두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을 나가시고,
엄마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은 더욱 커졌어요.
1년에 한번 볼까말까 했고,
아버지의 전화를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가끔 술 한잔 드시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셨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 올 봄에 저희 막내가 28살의 나이로 시집을 갔습니다.
양가 상견례 자리에도, 또 결혼식에도 아버지의 자리는 없었죠.
엄마는 그래도 아버지를 모셔야한다고 했지만,
저희 자매들의 극구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결혼 전에 제부와 함께 인사만 간단히 한 것 같더라고요.
결혼식 당일,
저희는 아버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식 준비에 분주했습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있었지만 허전하지도 않고 그게 부끄럽지도 않았어요.
차라리 돌아가신 걸로 치자며 산지 20년이 다된지라,
동생 친구들도 모두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중,
친척 어른을 모시러 식장 밖으로 나갔다가 양복을 입고 서성거리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습니다.
아버지의 양복 입은 모습을 그날 처음 본거였는데,
뒷모습만 봐도 아 우리 아버지구나.. 알겠더라고요.
당연히 모시고 들어오는 게 도리지만,
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돈되실 분들께 아버지의 존재를 보이고 싶지 않았고,
아버지에 대한 벽은 저보다 동생에게 더 높았거든요.
결국 전 아버지를 보고도 못 본채하며, 다시 식장으로 돌아왔죠.
근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동생을 시집보낸다는 서운함과 아버지의 힘없는 뒷모습이 섞여서,
결국 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차로 달려가 엉엉 울어버렸어요.

지금까지 동생들에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아버지가 결혼식장에 왔었다는 얘길 하지 않았어요.
저 진짜 못됐죠. ?
그래도 엄마는 지금도 아버지와 간혹 연락을 하시는지라,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에 대해 종종 들었습니다.
재혼을 하신 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대요.
그리고 전화 말미엔 늘 이렇게 물어보신대요.
미선이는 언제 결혼 하냐고. 만나는 녀석은 있냐면서요.

무섭고 엄한 아버지가 미웠고,
엄마와 우리를 버리고 떠나신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또 제가 나이를 먹고 보니까,
그 미움도 다 사라진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고 부를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예전엔 그런 게 부럽지 않았는데 이젠 부럽더라고요.
아빠와 딸이 함께 손을 잡고 가는 그 모습이...
우리도 그렇게 될 날이 오겠죠?
아버지가 이 방송을 들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송이 나간 뒤에 동생들과 어머니께 말씀드리려고요.
사실은 막내 결혼식 때 아버지가 찾아 오셨었다고...
막내가 웨딩드레스 입고 예쁜 모습을 몰래 훔쳐보고,
달아나듯 자리를 뜨셨다고요.
그러니까 미영아, 미정아.. 우리 이제 아버지 용서해드리자.
아무리 밉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우리 아빠니까..


신청곡은 인순이의 아버지 틀어주세요
이노래들으면 왠지 울컥해요

김미선 - 010-3469-3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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