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인, 금강산 여행에 매료
장엄한 금강산 자연과 사찰 문화 둘러봐
근대 강원도 일상과 풍속도 관찰
1876년 개항 이후 남북 분단 이전까지 금강산과 강원도를 소재로 한 140여 편의 외국인 여행기 중 서양인들에 의한 기록은 총 38편이다. 영국, 미국, 독일, 캐나다, 프랑스 등의 다양한 국적과 외교관, 선교사, 기자, 여행가, 학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금강산과 강원도를 찾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 외교관 캠벨(Charles William Campbell, 1861~1927), 금강산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 여성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 미국 선교사로 강원도에서 수십 년간 생활한 제이콥 무스(Jacob Robert Moose, 1864~1928) 등이 있다.
금강산은 단발령을 넘어 장안사를 통해 들어가는 내금강, 내금강을 지나 태백산맥 동쪽 지역에 해당하며 온정리를 통과하는 외금강, 외금강을 빠져나와 바다와 접한 해금강 등 총 3개 권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서양인 여행자들은 대체로 아래의 4개 경로를 이용하여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를 여행하였다.
1)서울에서 내금강 일대만 돌아보고 오는 경로
2)서울에서 내금강과 외금강, 그리고 해금강 일대까지 여행하는 경로
3)서울이 아닌 원산에서 내외금강을 거치거나 내외금강과 동해안 일대를 거쳐 서울로 오는 경로
4)강원도 전역을 두루 다니며 여행하는 경로
대표적인 경로 중에 서양인들이 가장 즐겨 이용한 경로는 2-1-3-4 순으로, 대부분 서울에서 출발해 금강산 일대를 돌아보는 경로를 주로 이용하였다.
개항 이후 1910년 이전까지는 여권과 관자(關子, 여행 협조문)를 비롯해 의복, 장비, 음식은 물론 요리사, 심부름꾼, 통역사를 대동한 대규모의 일행이 동원되었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신변 보호와 안전을 위한 가마와 총을 준비해 가기도 하였다. 1910년 이후로는 경원선(금강산전기철도)이 설치되면서 준비물품이 대폭 축소되었다. 금강산 등산에 필요한 짚신이나 가마, 주전부리용 간식 정도였다. 특히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필수품으로 언급한 ‘짚신’은 금강산의 미끄러운 암벽을 오르는데 최고의 등산화로 1920년대까지도 금강산 여행 시 필수 준비물이었다.
그럼 서양인들이 금강산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금강산의 신비로운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직접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 ‘금강산’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닌 매력, 앞선 여행자들의 여행기를 통한 동경과 자극, 동양 문화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만큼 서양인들의 기록 대부분이 금강산 여행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방문지 또한 금강산과 원산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록에 남겼을까? 서양인들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비로봉을 비롯한 구룡폭포, 명경대, 만폭동 등 금강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찾아갔다.
“비로봉은 단단한 벽처럼, 아니면 가벼운 비단 커튼처럼 ‘일만봉’ 이름 그대로 산꼭대기에 석탑과 석탑으로, 또는 석주와 날카로운 톱날 모양으로,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노르베르트 베버, 『수도사와 금강산』)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외국인도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물 위에 비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명경대나 금강산 전체가 불교 세계임을 알려준다는 묘길상, 자연 최고의 기적이라 칭한 구룡폭포와 구룡연 등 많은 서양인들은 금강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칭송을 넘어 자연과 신이 허락한 매력에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금강산의 자연경관은 그 자체로도 유명세를 떨쳤지만 금강산 내 불교문화 또한 서양인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40여 개가 넘는 금강산 사찰 중에서도 4대 사찰인 장안사,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를 중심으로 사찰의 역사나 의미, 독특한 건축을 비롯한 주변 자연과의 조화에 대해 기록하였다. 그들이 남긴 여행기에는 1913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의 신계사 모습이나 한국전쟁 때 파괴된 석왕사 등 잃어버린 문화유산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은 금강산 여행을 위해 이동하면서 보았던 경원가도(京元街道)의 화산암 고원지대 등 강원도의 지형적 특이성이나 강원도 지역의 모습도 기록으로 남겼다. 그들은 여행 중에 만난 농부, 광부, 승려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여러 계층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여행 중에 경험하였던 강원도의 음식, 생활과 풍속 등 꾸밈없는 강원인의 삶과 문화를 체득할 수 있었다.
서양인들의 여행기는 단순히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의 당시의 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만이 아니라 금강산 여행을 통해 불교문화, 강원도 주민 등과의 만남에서부터 깨닫게 된 점을 기록하고 자신을 타자화하는 성찰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자료 출처 : (강원학 학술총서 19) 금강산과 강원도, 근대로의 초대(이민희(강원대), 2021)
자료 도움 :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