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당령은 강릉 왕산면 송현리와 모계리를 이어주는 해발 721m의 큰 고개로 강릉과 정선을 잇는 35번 국도를 지납니다.
예부터 강릉과 정선을 오가는 길로 이용됐습니다.
‘삽당령’이라는 이름에는 ‘이 고개를 넘을 때 길이 험해 지팡이를 갖고 넘었으나 정상에 도착하면 지팡이를 꽂아 놓고 갔다’고 하여 ‘꽂을 삽’자를 썼다는 유래가 있습니다.
또한 ‘정상에서 서쪽으로는 고단가는 길이고, 북으로는 대기로 가는 길, 동쪽으로는 임계로 가는 길입니다.
이처럼 세 갈래로 갈라지는 삼지창같다고 하여 ’창 삽‘자가 붙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삽당령은 1715년(숙종 41)에 개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대동여지도‘, ’중수임영지‘, ’관동읍지‘에는 삽현으로 기록돼 있고, ’중보문헌비고‘에는 삽당령으로 돼 있으며, ’조선지도‘와 ’청구도‘에는 삽운령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삽현과 삽운령이 따로 표기돼 있습니다.
’강릉시사‘와 고갯마루의 표석에는 삽당령이라 표기돼 있습니다.
사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릅니다.
사료를 통해서 고개 이름이 일찍부터 쓰였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명의 한자 표기가 변천된 상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수임영지‘에 “강릉부 서남쪽 60리에 있으며, 정선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 고개의 양쪽 골짜기는 강릉시의 도마천과 정선군의 임계천 하곡을 잇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강릉과 정선을 오가는 길로 이용됐습니다.
지금은 35번 국도가 이 길을 지나고 있으며, ’강릉~정선~태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큰 령 전후로 사람들이 쉬어가는 역원이 있었습니다.
삽당령을 경계로 한 목계리와 고단리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돼 있습니다.
고단리에는 보안도가 딸린 고단역이 있었고, 목계리에는 평릉도에 딸린 목계역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삽당령이 그만큼 험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삽당령 인근의 가볼 만한 고개로 안반데기가 있습니다.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는 다섯 데기의 지명이 있습니다. 여기서 ’데기‘는 언덕을 말합니다.
그중 잘 알려진 곳이 안반데기입니다.
안반데기는 떡메로 떡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과 같이 평평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고지대에 있는 이 데기들에 옛날 화전민들이 살며 땅을 개간했습니다.
이 지역의 다섯 데기는 ’안반데기‘, ’괴비데기‘, ’장두데기‘, ’황철데기‘, ’황장데기‘입니다.
다섯 개의 데기들은 고사리, 황장목, 황철나무 등 그 언덕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 중 고랭지 채소밭으로 유명한 안반데기는 해발 1,100m의 고산지대입니다.
‘안반데기’은 ‘안반덕’의 강릉 방언이며, 안반덕으로도 불립니다.
사람들은 안반데기에 1965년 국유지 개간을 허가받아 감자와 약초 등을 재배했습니다.
그러다 1995년 경작자들에 농지를 불하하면서 현재는 20여개의 농가가 거주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산지가 됐습니다.
농지는 경사가 심해서 대부분 기계농이 불가해 주민들은 소로 밭을 일구며, 이곳에서 생산된 감자와 배추는 고지대라는 좋은 환경 덕분에 전국에서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안반데기는 험준한 백두대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따라서 고지대라는 특성상 봄은 늦게 오고 겨울은 일찍 시작돼, 넓게 펼쳐진 대지에는 계절마다 독특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