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잇적부터 금강산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번 유람하기가 원이었다’
조선 후기 유학자 김창협은 금강산 유람기인 ‘동유기’의 첫대목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금강산에 대한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한양에서 가는 대표적인 길이 경흥로입니다.
한양을 출발하여 양주-포천-철원-김화-회양-안변-함흥-북청-길주-명천-경원-경흥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두시 방향 노선으로 오늘날 43번 국도로 비정해 볼 수 있습니다.
경흥로는 한양과 금강산 간의 가장 단거리였으며, 역과 원 등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말을 타고 유람하는 사대부들의 숙식에 불편함이 없어 많이 이용됐습니다.
경흥로를 이용하는 여정은 한양과 경기지역에서 출발하여 포천-철원-회양-금성-단발령을 거쳐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노선입니다.
남효온, 김창협을 비롯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 등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이용했습니다.
평해로를 이용하는 여행길은 동해안을 따라 강릉-낙산사-삼일포 등을 유람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주류를 이룹니다.
당시 유람자의 거주지가 강원도이거나 금강산으로 가는 여정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할 때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양양부사로 임지에 왔던 정엽은 낙산사-청간정-화진포를 돌아보고 금강산 유점사로 들어왔습니다.
정철은 원주를 거점으로 금강산으로 향했습니다.
평해로의 지선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원주에서 흥양리 노루고개와 삼배고개를 지나 횡성관아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원주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유원역참에서 호저의 종포, 옥산을 지나 관격리에서 칠우 고개를 넘어 갈풍역참으로 가는 방향으로 주막이 많아 여행객이나 상인들이 선호했다고 합니다.
정철은 횡성에서 홍천, 춘천을 지나 소양강을 건너 철원에 당도했습니다.
춘천에서 철원으로 가는 길은 험준한 산길입니다. 현재도 시외버스가 춘천에서 출발하면 춘천댐-서면 지암리-원평리-신포리-사북면 지촌리-어리고개-오탄리-화천군 사창리-화천군 다목리-철원군 와수리-신술리-갈말읍 지포리를 지나 철원읍에 도착합니다.
산길을 돌고 돌아다니고 있어 옛길도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동주(철원)에 도착한 정철은 경흥로를 따라 회양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철원은 예나 지금이나 금강산으로 향하는 지름길에 위치해 있습니다.
현재도 동쪽으로 향하는 길의 명칭은 ‘금강산 가는 길’이고 표지판을 달아 놓아 그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북관정이 위치했던 관전리 마을에는 도로변 담자락을 전통식으로 바꾸어 단장하였으며 건너편 관전리 마을회관 앞에는 작은 북관정을 세워 버스정류소와 함께 활용하고 있어 북관정과의 인연을 끊지 않고 있습니다.
북관정의 위치로 보이는 자리는 숲이 우거져 외지인들이 찾아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북관정 터는 철원을 360도로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라고 하지만 숲에 덮여 선뜻 발길이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자료 도움 :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