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나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가 됐습니다.
오랫동안 은둔해 있었던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선정을 펼치겠다는 다짐이 ‘관동별곡’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은거지였던 창평에서 한양으로 올라와 임금에게 인사를 올리고 임지로 떠납니다.
그 과정 또한 긴 여정이겠지만 간단한 문장으로 날렵하게 벗어납니다.
임금이 내린 임명장 격인 관찰사 옥패를 앞세우고 한양에서 원주로 향하는데 평해로를 이용했습니다.
정철은 동대문을 지나 망우리 그리고 평구역에서 말을 타고 양평, 여주를 돌아 원주 감영으로 향했습니다.
이 길은 오래도록 한양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도로였습니다.
평해로의 출발점은 한양을 벗어나는 동대문(흥인지문)으로 보아야 한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동대문을 나서 망우리를 넘고 왕숙천을 건너 평구역에 이릅니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 주변입니다.
국도와 자동차전용도로에 싸여 있지만 조선말까지 최대의 역참이었습니다.
한양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가던 평해로에서 가장 큰 역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경상도와 일본에서 오는 사람과 물건이 모두 평구역을 경유했습니다.
마을 입구 터널에는 말 세 마리가 새겨진 마패 그림과 마패를 휘날리며 말을 타고 온 관리의 모습과 더불어 당시 마을 분위기가 벽화로 소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여막에서 머문 다음 송치(솔치)를 넘어 당일 감영에 도착했습니다.
지평은 지난 1908년 양근군과 통합되어 양평군으로 개편됐습니다.
안창리를 지나 섬강을 건너 간현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안현을 지나 만종, 그리고 감영에 도착했습니다.
이 길은 한양에서 강원도를 오가는 관리들이 많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평과 안창역을 연결하는 고갯길, 덕가산(간현산) 능선에 위치한 ‘욕바위’는 민과 관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유쾌합니다.
안창리 앞을 지나는 섬강에 자리한 간현관광지 입구에 정철의 시비가 세워지고 관련설을 부각시키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평범한 관광지 보다는 유명인사의 행적을 얻어 스토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돋보입니다.
간현관광지 입구 표석의 앞에는 ‘간현관광지’라고 음각돼 있고, 뒷면에는 오랜 세월 탓인지 표석에 이끼가 잔뜩 끼어 선명성은 떨어지지만 ‘흑수로 도라드니, 섬강은 어듸메오, 치악이 여긔로다’ 부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도착한 강원감영은 근무 인원이 400명에 이를 만큼 큰 규모를 가졌습니다.
정문인 포정루는 조선시대의 누각 형식입니다. ‘포정’은 조선시대 강원감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정사를 부드럽게 시행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