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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강원> 조선말 외국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강원

조선말 외국인 선교사들 "강원은 험한 산악지역으로 된 곳"

당시 항일 운동에 대해선 제국주의적 시각 '한계'

강원 주민의 성품이나 자연환경에 대해 '긍정적' 시선  


18세기 후반 조선에 학문으로 전해진 천주교는 점차 신앙으로 확산되었다. 신자들의 요청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파견되었고, 1886년 프랑스와 조불수호조약 이후, 선교사들은 제한적이나마 합법적으로 선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해방 전까지 강원지역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교사들은 종교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강원지역의 자연환경과 기후, 당시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외국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강원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외국인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강원지역의 자연환경과 기후였다. ‘험한산악 지형을 강원도의 주요 특성으로 여러 번 언급했다. 또한 이러한 지형적 특성이 그들의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강원도 내에서는 아직도 1866년 박해의 잔해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험한 산들이 신자들의 피신처가 되었는데, 그들은 그대로 이곳에 남아 버렸습니다.”

-뮈텔 주교의 1905년도 보고서, 서울교구연보』Ⅱ, 천주교 명동교회, 1987, 22.

 

우리 강원도가 첩첩산중에 있기 때문에 제일 좋은 공동체 몇 개가 산재하여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은 신자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A Big Day in Do Sa Oul”, Articles on Korea in the Irish Far East 1, p.32(1940.2).

전라도 목포에 도착한 선교사가 임지인 강원도로 오는 과정을 담은 기록에서는 다른 지역과의 비교를 통한 강원지역의 자연에 대한 평가와 함께 당시 교통상황도 알 수 있다.


강원도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한국의 산악지방입니다.

(중략)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여행은 4시간이 할당되었습니다.

우리는 다섯 시간 걸려 춘천에 도착했습니다.

(중략)

내 손에 든 이 5시간에 좋은 경치를 감상했습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경치, 아름다움이 예술가의 붓을 휘두를만합니다.”

(중략)

전라도에는 광활한 평야가 있는데 비해 강원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야 뒤에는 산들이 탑처럼 우뚝 서있고요. 남쪽의 산들은 놀이동산 장난감 같은데 비해 강원도의 산들은 준엄하고 나무가 우거진 것이 서로 다른 점입니다.

-“In the Mountains of Korea”, Articles on Korea in the Irish Far East 1,p.137(1941.1).

 

선교사들은 강원지역의 지형, 지리뿐만 아니라 기후나 재해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또한 혹독한 추위나 폭설, 다양한 자연재해와 그로 인한 피해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곳은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입니다.

-뒤테르트르 신부의 1895622일 서한, 강원도 프랑스 선교사 서한집』Ⅰ,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2015, 59.


그들은 낯선 환경에서 겪었던 열병, 콜레라,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 많은 질병도 자세하게 기록했다.


얼마 전 이곳 비신자 마을에 콜레라가 돌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저희 신자들이 사는 마을에는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 단지 한 신자 가족이 피해를 입었고 예비신자 서너 명이 콜레라로 사망했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입은 피해의 전부입니다.”

-부이수 신부의 1897816일 서한, 강원도 프랑스 선교사 서한집』Ⅱ, 춘천교구 교회사연구소, 2015, 50.


외국인 선교사들은 동학농민운동, 의병 활동, 한일강제병합 등 당시의 역사적 사건도 기록으로 남겼다. 다만 그들의 기록에서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온전한 이해보다는, 제국주의 국가 출신의 시선이라는 한계도 엿보인다.

의병 활동에 대한 기록을 보면, 당시 강원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일 감정이 자신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지방에는 반일 감정이 격하게 일고 있고, 또한 그것이 모든 외국인에 대한 감정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중략) 도처에 반도(叛徒)들이 의병이라는 이름 아래 집결하고 있는데, 그 중 상당수가 강원도 출신입니다.

-부이용 신부의 1896211일자 서한, 개인 소장.

또한 간도 이주와 관련한 기록에서는 선교사 입장에서 신앙에 대한 부분과 당시 신자들의 경제적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당시 신자들은 산간지역에서 화전이나 옹기를 제작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일제의 삼림정책 강화로 이러한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상황 타개를 위해 간도로 이주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신자들이 간도로 이주하면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내고 있다.


 영동에서는 벌목을 금지하는 새 법률 때문에 예외 없이 모두가 옹기마을인 그곳의 공소들은 벌써부터 안정이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내평 교우들이 떠나게 될 경우에 영동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는데 사정이 이러하니 저의 처지는 곤란해질 것입니다.”

-뤼카 신부의 1913116일 서한, 함경도 선교사 서한집』Ⅱ,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5, 306.


그들(신자들)은 간도에서 꿈의 고장을 그들에게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주는 삶의 조건을 발견할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가난은 가중되기만 할 뿐, 보다 심각한 것은 몇몇 사람들은 신앙적인 측면에서 갈피를 잃고 있다는 점으로 참으로 걱정스런 일입니다.

-시잘레 신부의 1927427일 연말보고서, 용소막본당 10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용소막교회, 2004, 205.


강원지역은 1884년 북강원에 이천 본당이 설립된 이후, 18995,000명이었던 신자가 1922년에는 10,111, 8개 본당, 118개의 공소로 크게 성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국인 선교사들은 활동 초기 강원지역에서 열악한 환경과 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신앙생활과 함께 자연환경이나 강원 주민의 성품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남겼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에서는 외국인의 시선 및 제국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시대적 한계도 함께 드러난다. 그들의 기록은 당시 강원지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지만, 타자(他者)의 시선이라는 점과 당시의 시대상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료 출처 : (강원학 학술총서 13) 외국인 선교사의 눈에 비친 강원지역(이원희, 정병진, 김인선, 2019)

자료 도움 : 강원역사문화연구원 강원학연구실 학술연구정보팀

이종우 기자 jongdal@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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