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29m인 진부령은 태백산맥을 넘는 강원지역 고개들 중 가장 낮습니다.
과거 미시령터널 개통 전에는 폭우나 폭설이 왔다 하면 미시령이 가장 먼저 통제되고, 한계령이 통제돼도 진부령은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런 자연 환경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진부령은 고성군 간성읍과 인제군 북면 사이를 이어주는, 남한에서 최북단에 위치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입니다.
예로부터 강릉의 대관령, 북한 지역의 추가령과 함께 백두대간을 오가는 3대 고갯길로 불리어 졌습니다.
높이가 500m가 넘지만,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 중에서는 가장 낮은 고개입니다.
지형이 크게 험준하지 않아서 조선시대 이전부터 금강산 유람을 떠났던 사람들이 주로 애용하는 코스였으며, 보부상(褓負商)이 넘나들던 길이었습니다. 진부령은 ‘진벗령’, ‘조장(朝場)’, 그리고 조장이 변음된 ‘조생이’ 등으로 불리는데 ‘진부’의 유래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고개의 길이는 약 60km로 1981년에 국도로 승격됐습니다.
‘관동지’에 의하면 “진부령은 고을 서쪽 50리에 있으며, 고을 북쪽 읍에서 영서지방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예전에는 길이 심하게 기울고 좁아서 1632년에 관에서 승역(僧役)을 모집하여 길을 열고 이를 관리했다. 고개의 형세는 아주 낮고 악석이 없어서 다니기 편하지만 겨울에는 눈으로 길이 막힌다”라고 했습니다.
2006년에 미시령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자전거 도로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진부령은 백두대간 등산로의 최북단으로 ‘마산령~대간령~신선봉~미시령’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서 최근에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습니다.
진부령은 주변의 미시령이나 한계령처럼 웅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제 방향에서는 ‘이것이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인가’라고 의심할 만큼 편안하고, 고성 방향에서는 몇 굽이만 돌아서면 바로 도로로 이어집니다.
어엿한 국도로서 운전자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애처롭기 그지 없는 도로이기도 합니다.
금강산 자락의 고갯길이지만 전쟁이 주는 상처 속에 도로 북쪽으로는 바라만 볼 뿐, 넘어설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있는 고개입니다.
진부령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을 찬미하는 ‘진부령 아가씨’의 가사가 정상부의 노래비 표지석 뒷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진부령은 예부터 많은 유람객이 지나간 고개입니다.
이 고개를 지나간 기록이 유람기 형태로 남겨졌습니다.
조선 중엽의 충신 양대박은 1572년 4월 4일에 한양에서 출발하여 금강산을 유람한 후 ‘금강산 기행록’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진부령이 언급됩니다.
진부령은 백두대간의 다른 고갯길에 비해 가장 낮은 고개이면서 비교적 험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금강산을 찾는 문인들이 자주 이용하던 노선이었습니다.
진부령 정상에서 고개를 넘으면,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흘리’ 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을 흘리라고 부르는 이유는 ‘겨울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세찬 눈바람이 거세서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둘러싸인 지역이라는 의미로, 우뚝 솟을 흘(屹)자를 사용하여 ‘흘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이곳 흘리마을은 민족의 비극이었던 한국전쟁의 수복지입니다.
전쟁 이후 한동안은 통제구역으로 묶여서 지역 주민들조차 통행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이후 고장 주민들과 실향민들이 정착하며 마을을 일구었습니다.
지역 자체가 워낙 추운 지역이라 5월까지 눈이 내리는 일이 허다했고, 초기에는 흉년과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고생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