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서울 시내를 가로 지르듯 춘천은 공지천이 가로질러 흐릅니다.
공지천의 지류중 하나가 바로 약사천입니다.
그 약사천 끝자락에 하얀색의 카페같은 건물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보문각’입니다.
‘보문각’의 시작은 19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이라는 시점은 창업주인 전춘길, 손명숙 부부의 아들이 태어난 해입니다.
정확한 개업년도 파악이 어려웠는데, 아들을 임신했을 때라고 하니 1970년 이전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게의 출발이 춘천이었던 것도, 상호 ‘보문각’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충청도 출신인 창업주는 가게를 처음에 군산에서 시작했습니다.
중국집 특성상 음식 냄새가 많이 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원성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춘천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가게 이름도 ‘대흥루’, ‘태화각’이라고 했다가, 춘천 구도심인 약사명동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보문각’이란 상호를 쓰게 됐습니다.
처음 개업했을 때에는 다른 중국집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느 중국집처럼 탕수육부터 시작해 양장피, 팔보채, 깐풍기 등 다양한 중화요리를 취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손님들이 짜장면 말고 빨리 먹고 갈수 있는 음식이 없냐고 물어보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단골손님 중에는 우체국 집배원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분들의 요청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쨌든 이런 요청이 왔을 때 주방에 있던 재료로 양념을 해서 국수에 얹어 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보문각’의 비빔국수가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정식 메뉴로 개발했을 때는 고명이고 뭐고 따로 없이, 아예 비벼서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다 방송 출연으로 전국구로 알려지면서 손님들이 더욱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늘어나자 노부부가 된 창업주는 감당할 여력이 없게 됐습니다.
힘에 부쳤던 노부부는 은퇴도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래도 요식업계에 종사했던 며느리가 발벗고 나서게 됩니다.
바로 2대 김선미 사장입니다.
김선미 사장은 시부모에게 비빔국수 비법을 전수 받고, 현재의 건물로 이전해 비빔국수도 고명을 올리는 등 메뉴 개선을 하게 됐습니다.
언제인가 국수 열풍이 불기도 했습니다.
여러 국수 프랜차이즈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집들 대부분 국수면은 소면으로 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문각’의 비빔국수는 남는 중국식 면과 재료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이런 중국식 비빔국수가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 됐습니다.
일반 소면에 비해 굵기도 굵고 면도 쫄깃해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겁니다.
정식 메뉴가 되면서 면을 뽑는데 공력을 더하게 됐습니다.
원래 중국 요리는 면을 뽑고 삶는 방식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비빔국수에 최적화된 면을 뽑는 법을 개발했고, 그 비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김선미 사장이 꼽는 맛의 비결도 거기에 있습니다.
배합이 잘 된 양념과 그 양념과 잘 어울리는 면발, 이것이 보문각의 명성을 잇는 비법인 겁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