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서 미시령 터널로 넘어가는 부근에 일명 ‘콩꽃마을’로 불리는 ‘학사평 두부마을’이 있습니다.
도로변을 따라 80여개의 순두부 식당이 있는 순두부촌입니다.
이곳에 있는 순두부는 바닷물을 간수로 하여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맛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순두부집 중 ‘김영애할머니순두부’가 원조로 알려져 왔습니다.
초대 사장인 김영애 할머니(1916년생)는 양양 출신으로 1965년부터 두부를 생업을 삼았습니다.
처음 장사를 한 곳은 속초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시골이었습니다.
시내까지 걸어서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고, 교통편도 열악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목이 안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바로 이런 점때문에 이곳에 가게를 열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를 할 때, 제사를 지낼 때에도 두부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그 시골에서 시내까지 나가서 두부를 사 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시골 사람들이 할머니 가게에서 두부를 사게 됐습니다.
두부집 초창기에는 ‘순두부’는 없었고 모두부만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 속초에 명성콘도를 짓기 시작하면서 학사평 저수지 앞에 노동자들을 위한 함바 식당이 함께 들어섰습니다.
식재료로 두부가 필요했는데 시내까지 나가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할머니 가게에서 두부를 받았습니다.
한창 개발이 진행되던 시기였기에 수요가 많았고, 하루 평균 30모 정도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러다 노동자들 사이에서 두부가 맛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납품하기도 빠듯한데 손님까지 몰리면서, 감당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1976년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맷돌로 콩을 갈고 장작으로 불을 피우는 완전 재래식으로 두부를 만들었던 터라 빠르게 대량 생산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다 두부를 빨리 달라는 손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존의 모두부가 아닌 덜 굳은 순두부를 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의 순두부로 굳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미시령을 넘나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계령과 진부령의 비포장 도로로 다녔는데, 그러다보니 춘천까지 5시간씩 걸리곤 했습니다.
1990년쯤 대명리조트에서 세계 잼버리대회가 열리면서 미시령에 포장도로가 생겼습니다.
길이 뚫리면 사람이 다니기 마련. 방문객이 많아졌는데 당시만 해도 주변에 먹을 만한 마땅한 음식점이 없어서 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김영애할머니순두부’를 찾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입소문이 퍼졌고 장사가 잘 되면서 그 주변에 순두부집이 많이 생겼습니다.
나중에 생긴 가게들은 손님들의 입맛에 맞게 여러 가지 메뉴를 만들어 판매했지만, 할머니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김종이(막내 아들) 사장은 메뉴를 늘리지 않고, 오로지 ‘국산콩 순두부’ 단일 메뉴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재료에서부터 신경을 많이 씁니다.
지금은 인제 현리에서 생산되는 콩을 쓰는데, 11월말에서 12월 경에 수확한 1년치 콩(300가마 정도)을 한꺼번에 구매합니다. 이 시기에 나온 콩이 가장 맛있기 때문입니다.
가게에 왔다가 단일 메뉴를 보고 돌아가는 손님도 많지만, 메뉴를 늘리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게 사장의 철학입니다.
여러 메뉴를 준비하는 데 쏟을 공력을 더 맛있는 순두부를 만드는데 쏟는 것입니다.
다른 메뉴를 먹고 맹맹한 순두부를 먹으면 본연의 맛을 다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단일 메뉴를 고집하는 건 탁월한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사장은 가게를 방문했다가 메뉴가 하나인 것을 보고 돌아간 손님은 잃어버린 손님이 아니라 원래 오지 않을 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고집이야말로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비법을 지키는 비결이 될 지도 모릅니다.
사장은 누군가 먼저 내 놓으면 결국 돌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게 영업도 아침 7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운영합니다.
돈을 더 벌려고 했다면 영업시간을 늘렸겠지만, 일찍 문을 닫으면 주변 가게들로 손님들이 갈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전체 상권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료 도움 :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