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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강원의 ‘고갯길’을 가다> ⑭ 소공령, 황희의 선정을 기억하는 고개

 소공령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와 노곡리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지금은 포장된 임도 형태의 길이지만 예전에는 관동대로였습니다.


 삼척과 울진 사이를 지나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고개였습니다.


 소공령은 1916년에 7번 국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주요 도로의 역할을 했습니다.


 과거 험준한 지역에서는 고도가 낮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고개를 넘은 후 반대편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방식으로 길을 내었습니다.


 계곡을 따라가면 높낮이의 차이가 크지 않고 급경사를 이루는 곳이 많지 않아서 대체로 평탄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협곡을 이루는 경우는 달랐습니다.


 높은 산의 고개 정상부에 가까워질수록 계곡의 폭은 대체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고 벼랑을 형성한 곳도 적지 않았습니다.


 벼랑을 따라 낸 길을 흔히 ‘잔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이러한 길을 천(遷)이라 표기했습니다.


 한두 명이 지나 다닐 때에도 길의 폭이 좁아서 위태로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좁고 위태로운 길인데도 사람들이 역로로 운영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보로 이동할 때는 최단 거리를 택해야 합니다. 즉 고개를 넘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평탄한 계곡을 따라 이동하다가 높이가 가장 낮은 능선부를 택해서 넘었던 겁니다.


 소공령은 최단거리로 이동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소공령의 본래 이름은 ‘와현’이었습니다.



 그런데 황희가 이곳을 방문한 뒤 소공대(召公臺)가 세워지면서 고개 이름 대신에 소공령이라 불렸습니다.


 소공령은 조선시대 명재상인 황희를 만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관동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자 황희는 사재를 털어 백성들을 구제했습니다.


 이후 그의 은덕을 기리는 소공대비가 소공령의 이정표가 되었고, 관동의 대표적인 명승으로 기록됐습니다.


 소공령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울릉도가 보이는 곳이라는 겁니다.


 조선시대 울릉도는 공도정책 때문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만 날씨가 좋으면 소공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조선시대 문인들은 소공대에 올라 울릉도를 보았고, 이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소공대는 일출의 조망지로도 회자됐습니다.


 관동을 왕래하며 소공대를 지난 이들은 소공대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며 시로 남기거나 그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이종우 기자 jongdal@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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