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향로봉과 진헐대를 돌아보면서 금강산의 진면목을 본 듯합니다.
정철은 금강산의 풍광을 중국 여산에 비교했습니다. 중국의 여산은 지난 1996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중국의 명산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더욱이 여산에는 중국이 자랑하는 시인 이백, 두보, 백거이 등 유명 시인 묵객들이 머물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백이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노래한 ‘여산폭포’는 절창으로 손꼽힙니다.
정철의 절친, 율곡은 19세에 금강산에 입산하여 1년여를 머물렀습니다.
율곡은 남긴 금강산 답사기인 ‘만폭동’, ‘비로봉’ 등의 여행시와 600구 3천자로 이뤄진 한시 ‘풍악행’을 남겼습니다.
율곡 답사기의 특징은 여행객들이 가마나 말을 타고 명승지를 유람한 것과는 달리 1년 동안 자세히 관찰한 뒤 시를 남겼다는 점입니다.
율곡은 “내가 듣고 본 것을 모아 삼천 언을 만들었지만 감히 사라고 할 것은 못되고, (중략) 시를 보시는 분들은 비웃지마시라”고 했지만 금강산유람기의 발군으로 꼽힙니다.
‘높을시고 망고대 외롭구나 혈망봉 / 하늘에 치밀어 무슨 일을 사뢰고자 / 천만년 지나도록 굽힐 줄 모르느냐 / 어와 너로구나 너 같은 이 또 있는가’
정철의 호연지기를 가늠할 수 있는 문구가 여기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지조를 상기합니다.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를 토해낼 것 같은, 찌를 듯 솟아로른 망고대와 혈망봉의 기개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기상을 이입하고 있습니다.
비로봉 동쪽에 일출봉과 월출봉이 있고, 남쪽에 단아하게 솟아올라 교만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혈망봉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봉우리가 우뚝 솟아 마치 연꽃이 물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원통골 가는 길로 사자봉을 찾아가니 / 그 앞의 너럭 바위가 화룡소가 되었구나 / 천년 묵은 늙은 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어 / 밤낮으로 물을 흘러 내려 창해에 이었으니 / 풍운을 언제 얻어 단비를 내리려나 / 음지 비탈 시든 풀을 모조리 살려다오’
원통골을 지나 사자봉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크고 넓은 너럭바위가 커다란 연못이 됐습니다.
그곳에 천년 묵은 노룡의 기운, 즉 정철의 신념이 있습니다. 노룡이 정철 자신의 모습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노룡의 기운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서 바다에 닿았고 풍운의 기운을 얻어 어린 백성을 살려내겠다는 선정과 애민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