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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희생,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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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남) 올해는 일제의 억압에 맞선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인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도내에도 3.1운동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요,

여)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조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박성은 기자가 독립 유공자들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리포터]
100년 전인 1919년 4월 경기도 양평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기도지단을 조직하는데도 기여한 신우균 선생.

홍천에 살고 있는 신우균 선생의 외손녀 고경자 씨는 외할아버지가 몽양 여운형 선생을 보좌하면서, 임시정부의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다고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인터뷰]
"일본 형사들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왔다 그러니까 얼굴이 노래져서 집에 왔는데, 집에 있는 독립문서 그 거는 처마 밑에 감췄는데, 그걸 할아버지가 꺼내서 얼른 아궁이에 넣으셨대요. 태우지 않았으면 그건 사형감이니까요."

[리포터]
신우균 선생은 3.1 운동 당시에는 태형 90대라는 가혹한 처벌을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고 씨는 외할아버지가 형무소에서도 큰 고초를 겪었다고 전했습니다.

무릎을 꿇린 채 학대를 당해 결국 불구가 돼 석방됐다는 겁니다.

[인터뷰]
"석방이 됐다고 동네 사람들이 업어 오는데, 다리가 굳어서 걷지 못해서 그냥 업고 나오셨대요."

[리포터]
1919년 4월 2일 당시 경기도 안성군에서 독립만세운동 활동을 하다 피살돼 순국한 김재항 선생의 손녀, 김영주 씨는

할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가정이 풍비박산에 이르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인터뷰]
"너무 어려워서 (할아버지가)아버지 7살 8살 때 돌아가시고, 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순국 전) 1년 전에 돌아가시고, 그러니 아주 난장판이었죠."

[리포터]
1919년 3월 30일 충북 괴산군에서 3천여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부르고,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다 일제 경찰의 총탄에 쓰러져 숨진 노도원 선생의 외손녀 김경자 씨도,

외조부의 헌신에 항상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인터뷰]
"그래도 나라에 명예가 있고 이름이 있는 건데, 그렇잖아요. 우리 할아버지 이름이 걸린 일이니까 잘 된 거죠. 돌아가신 명예는 있잖아요."

[리포터]
독립유공자 후손들 가운데 현재 도내에서 생존해 있는 사람은 168명.

대부분 팔순이 넘으신 고령자들인데다, 녹록치 않은 형편 속에서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서 독립 운동 유산의 보존과 아직도 확인되지 못한 독립유공자 발굴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G1뉴스 박성은입니다.
박성은 기자 bssk@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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