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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회담에서 시작된 깃대전쟁]

휴전회담은 하나부터 열까지 치열한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당시,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의 신경전은 대단했다. 그런 가운데 벌어진 웃지 못 할 양측의 신경전 하나!


회담장에 들어선 유엔군 측이 작은 유엔기를 협상테이블에 놓자 미처 국기를 준비 못한 공산군 측은 이날 오후 유엔기보다 10센티미터 높은 북한 국기를 협상테이블 위에 놓는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유엔군도 더 높은 깃대를 준비하는데...


이렇게 유엔군과 북한군, 양측은 깃대 높이기 경쟁에 돌입했다. 깃대의 높이, 굵기, 받침대까지 크기 경쟁이 펼쳐졌다. 회담장에 들여놓지 못할 만큼 커지자 양측은 깃대의 규격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의미한 자존심 경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과거엔 깃발 높이를 두고 경쟁이 붙어 회담장 안으로 못 들여올 정도로 높아진 때도 있었다.” - 김영규 한미연합사령부 공보관 -


[대성동, 기정동 마을에서 다시 시작된 깃대전쟁]

그런데...

정전협정 이후, 다시 시작된 깃대 전쟁!

바로, 한반도 유일의 DMZ 안 거주지인 남한의 대성동과 북한의 기정동 마을에서였다.

두 마을에서 국기 높이 달기라는 체제 우월 경쟁이 시작된 건 1954년 말.

먼저 기정동에 30미터가 넘는 깃대가 세워졌다. 이에 뒤질세라 대성동에는 이듬해 기정동의 깃대보다 18미터 더 높은 48미터짜리 깃대가 세워졌다.


[보이지 않는 두 마을의 신경전]

이렇게 시작된 깃대 경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됐고, 결국 기정동에서 무려 160미터짜리 깃대(세계에서 가장 높은 깃대로 기네스 기록에 등재되기까지 했다.)를 세우기에 이르는데...


지금도 휴전선을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서 있는 두 개의 국기 게양대...

분단시대가 나은 슬픈 풍경... 두 마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에서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