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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평화지대.6/DLP> 실향민 새터 '속초 아바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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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전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을 짚어보는 기획보도 순서입니다.

속초 아바이 마을하면 지금이야 순대와 갯배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실은 한반도 유일의 실향민 집단 정착촌입니다.
금세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던 고향인데 어느덧 70년이 지났습니다.
실향민의 애환을, 원석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한국전쟁에 중공군이 개입한 1950년 11월.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국군은 패주를 거듭했고, 이북지역의 피난 행렬은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함경남도 흥남부두에 새카맣게 몰린 피난민 무리는 고향을 뒤로 한 채 군함에 올라야 했습니다.



"함경도 지역에서 봇짐을 메고 피난을 떠난 주민들은 백사장이었던 이곳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총성이 멎을 때까지 머물다가, 보란 듯이 귀향하길 기원했던 함경도 주민들.

허허벌판에 움막집을 지어 비바람을 피했습니다.

[인터뷰]
"아바이마을에 오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조그만 배들이 수두룩하게 있고, 벌판이야 그냥."

어느덧 한 세기를 살아낸 실향민 1세대.

뼛속까지 시린 겨울날, 부둣가에서 놓친 열댓 살의 아우는, 세월의 더께가 무색하게도 선명한 기억 속에서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인터뷰]
"내다보니까 (동생이) 발을 동동 구르고 물에 뛰어들어가려고 그러고. 열다섯 살 먹어도, '형 나는 말이야 온 길을 모른다' 이거야. 항구 나올 때까지 손만 흔들었지. 아무런 접촉도 없었어."

허름한 움막촌으로 출발한 아바이마을은 인기 드라마와 예능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속초 시내와 아바이마을을 잇는 갯배의 한해 이용객만 백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이제 아바이마을은 관광도시 속초의 '메카'입니다.

[인터뷰]
"며칠만 있으면 갈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못 가고 우리 엄마, 아버지들은 다 돌아가시고, 이제 저희 2세들이 남아서. 큰집, 작은집 사촌들도 없고 끈들이 없는데, 그나마 전국에서 이렇게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아바이마을의 어원인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는 아버지라는 뜻.

실향민의 후손들은 한평생 북쪽의 고향을 그리워한 아버지들을 그리며, 새터전을 닦아나가고 있습니다.
G1뉴스 원석진입니다.
원석진 기자 won@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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