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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부 DMZ에 반달가슴곰이 산다

    방송일 201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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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8일, SBS 8 뉴스에서 DMZ내의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의 영상이 공개 되었다. 반달가슴곰이 발견된 곳은 양구, 인제, 고성을 이르는 강원도 일대였다. 1983년 설악산에서 포수의 총에 맞은 반달가슴곰이 죽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반달가슴곰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후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려는 프로젝트가 실행됐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들려온 반달가슴곰의 출현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도토리, 다래 등 먹이가 풍부한 울창한 활엽수림의 DMZ는 먹이 90% 이상을 식물에 의존하는 반달가슴곰에게 좋은 서식환경을 제공했다. 반달가슴곰뿐만 아니라 2,716여 종의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는 DMZ. 과연 DMZ 내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을까? DMZ 내 반달가슴곰을 최초 발견한 국립생태원 연구원들의 이야기를 DMZ 스토리에서 들어본다. [DMZ 스토리 250부 DMZ에 반달가슴곰이 산다]

  • 249부 양지 축구단, 특명! 북괴를 꺾어라

    방송일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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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 간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한국 정부. 정부는 오직 북한을 이기기 위한 축구단을 창단한다. 바로 육, 해, 공군과 해병대, 그리고 실업팀 선수까지 강제 차출해 만들어진 중앙정보부 (현 국가정보원) 소속의 ‘양지 축구단’ 당시 국가대표 23명 중 11명이 ‘양지 축구단’ 소속이었을 만큼 초호화 선수단을 꾸렸다. “이기라면 이기고, 죽으라면 죽어라” -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 북한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새벽 6시부터 저물 때 까지 이어진 강도 높은 훈련은 축구의 ‘실미도 부대’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대통령 배 전국 축구 대회는 물론 아시안 챔피언 클럽 토너먼트 준우승 등 총 26전 18승 2무 6패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둔 양지 축구단.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단 3년 만에 해체하게 된다. 짧은 역사를 남긴 채 해체됐지만, 훗날 한국축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양지 축구단. 양지 축구단의 탄생과 활약 그리고 그들이 한국축구에 남긴 의미를 DMZ스토리에서 재조명해본다.

  • 248부 명태복원프로젝트

    방송일 2017-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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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물고기로 불리며 명절 상에서 빠지지 않는 명태. 그러나 남획과 해수 온도 상승 등으로 언제부턴가 국내산 명태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국민 생선 명태를 되찾기 위해 시작된 <동해안 명태 복원 프로젝트> 명태 복원 프로젝트의 시작은 명태 수배령이었다. 살아 있는 명태 1마리에 내걸린 현상금은 무려 50만 원. 연구원들은 1990년대 이후 동해안에서 사라진 명태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살아있는 명태를 확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갓 죽은 어미에게 채취한 알에서 12만 개의 수정란을 얻어 그중 9만4천 마리를 부화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부화 60일 만에 전량 폐사하면서 명태 복원 프로젝트는 난항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민의 제보로 확보하게 된 살아있는 명태 1마리. 살아있는 암컷 1마리가 12차례에 걸쳐 낳은 알은 무려 70만 5천여 개. 명태 복원 프로젝트 시작 2년 만에 이루어낸 첫 인공부화의 성공이었다. 수정란 70만 5천여 개 중 살아남은 치어는 불과 3만 마리. 그중 절반을 고성 저도 앞바다에 방류했다. 그리고 2017년 1월 23일,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속초에서 잡힌 명태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재작년 고성 앞바다에 방류한 명태와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한민족 분단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국민 생선 명태가 되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DMZ스토리에서 들여다본다

  • 247부 위기일발, 덕수궁을 구하라!

    방송일 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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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9월 15일, UN군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인천에 상륙하여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 유엔군의 인천 상륙에 크게 당황한 북한군이 덕수궁으로 집결하게 되면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덕수궁이 유엔군의 공격 목표가 되어버린다. 그 긴박한 상황 속 고민에 빠진 한 남자가 있었다. 바로 유엔군 포병장교였던 제임스 해밀턴 딜. 제임스 해밀턴 딜은 덕수궁 포격 지시를 내린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고뇌에 빠진다. ‘덕수궁을 포격하면 나는 틀림없이 수백 명에 달하는 적군의 병력과 장비를 순식간에 괴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덕수궁도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 제임스 해밀턴 딜 <폭파 위기의 덕수궁> 中 - 긴 고민 끝에 결국 덕수궁을 포격하지 않고 북한군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공격하기로 한 제임스 해밀턴 딜. 초조한 기다림이 지나고 덕수궁을 빠져나와 이동 중인 북한군을 향해 제임스 해밀턴 딜은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포격개시를 명령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 한 미국 장교의 양심과 용기 있는 결단으로 지금까지 이 자리에 남아 현재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덕수궁. 한순간 사라져버릴 위기에 처했던 덕수궁의 그날을 에서 만나본다.

  • 246부 궁예의 대장정 루트

    방송일 2017-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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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 891년 영월 세달사를 떠난 궁예. 894년 10월 명주(강릉)를 장악하고 장군이 된 그는 군사 3500명을 이끌고 사라진다. 그리고 열 달 후인 이듬해 8월, 철원에 나타나 ‘고려’라는 국호를 만들고 나라를 세운다. 그런데 명주(강릉)에서 철원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꼭 넘어야 했던 백두대간. 궁예의 행로는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아 미궁으로 남아있다. 과연 궁예는 어떻게 백두대간을 넘었을까?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궁예의 대장정 루트는 과연 어디었을까? <슬픈궁예>의 저자 이재범 교수의 말에 따르면 명주에서 철원에 이르는 궁예의 대장정 루트는 현재의 DMZ와 정확히 일치한다. 지금의 DMZ와 궁예가 지나온 경로의 일치는 과연 우연이었을까? 명주(강릉)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인제, 양구, 화천, 금성 그리고 철원까지 이어진 대장정. 처음에는 궁예의 국경이었지만 훗날 통일 국가의 출발선이 된 궁예의 대장정 루트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DMZ 스토리에서 조명해 본다. [DMZ스토리 246부 궁예의 대장정 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