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부 다시 찾은 조선의 풍류, 철원북관정

    방송일 2017-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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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의 명소 조선시대 '북관정(北寬亭)' 터에서 최근 주춧돌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북관정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정자다. “동주(철원)의 하룻밤을 겨우 새우고 날이 새자마자 북관정에 오르니, 임금 계신 서울의 삼각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웬만하면 보일 것도 같구나. 옛날 태봉국 궁예왕의 대궐 터였던 곳에 까막까치가 지저귀니, 한 나라의 흥하고 망하던 역사를 아느냐? 모르느냐?“ 조선시대 선비들의 최대 풍류는 금강산 탐승이었고 철원은 금강산으로 가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길목이었다. 금강산으로 향하던 선비들은 철원에 머물 때는 주로 철원부 관내 북관정에서 그들의 시문을 뽐냈다. 청나라의 침입으로 전소되었다가 재건 후 6.25 전쟁으로 다시 전소된 북관정. 지금은 민통선 내에 갇혀 주춧돌만 남은 북관정, 민통선 내의 역사 유적지, 북관정을 통해 분단으로 단절된 조선시대 내금강 유람 문화를 들여다본다.

  • 259부 송창화가의 잊혀진 풍경

    방송일 201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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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 년째 분단의 풍경을 화폭에 그려온 송창(65) 작가. 그는 우리에게 분단은 끝이 아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가 ‘분단’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송창은 80년대 중후반부터 판문점, 임진강, 철원 일대 비무장 지대를 답사하고 큰 충격을 받아 분단 현실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단은 60년 이상 우리 삶을 옥죄며 엄존하지만, 망각되고 있습니다. 분단은 전쟁을 예비한다는 점에서 해소시키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같아요. 분단과 전쟁으로 죽고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죽음의 기억을 색다르게 호명하는 꽃 같은 오브제 등을 수년전부터 쓰기 시작했지요. 색감의 효과나 구성 등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가 이 작품들입니다.” -이젠 끊겨버린 평북 의주행 1번국도 한 자락 -철원과 연천 비무장지대의 논두렁 -한국전쟁 때 숨진 병사들의 유해를 불태운 화장로 탑 -비무장지대를 답사하고 돌아오다 황혼녘의 임진강 하류 창공에 새까맣게 모여든 철새들의 모습.. -기차를 타면 단숨에 갈 수 있는 고향을 지척에 둔 망향의 그리움이 절절이 묻어나는 ‘연천발 원산행’ 1980년대부터 비무장지대를 돌며 자신만의 화풍으로 담아낸 송창 작가의 분단 풍경들을 만나본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그곳,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분단의 현실과 그 아픔을 이번 DMZ스토리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 DMZ 스토리

    방송일 2017-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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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향수를 강 건너 접경지역의 옛 풍경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그곳을 찾아간다는 조천현 사진작가. 사진작가 조천현이 카메라에 기록한 압록강 건너 북한의 모습들을 만나보자. 우리가 언제부턴가 갈 수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북녘. 그곳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눈물의 강’이라고도 불리는 압록강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아이들의 낙원, 썰매장이 되기도 하며,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되기도 한다.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평범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풍경들이 많았다. “조‧중 접경지역을 기록하면서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을 보고 느낀 점은 북한이 정지된 사회가 아니었고, 그곳에도 사진 속에서처럼 자유가 있고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조천현(압록강 너머 사람들 中)- 압록강은 접경지역, 그러나 언젠가 통일이 되면 한반도의 국경이 될 곳. 그리고 우리 민족의 생명이 흐르는 강. 조천현 작가가 담은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통해 ‘민족과 통일’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조천현 작가는 북한 접경지대에 관심을 가지고 20년 이상 국경의 강을 촬영해온 작가로서 1997년 5월, 조‧중 접경지역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KBS 일요스페셜 “북한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지고 있나” 취재를 위해 두 달간 접경지역에 머무르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는 북한의 변화된 모습과 자유가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을 담아왔다.

  • 257부 군번 없는 나이팅게일, 오금손대위

    방송일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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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오금손 대위는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녀 역시 광복군 제 3지대에 입대해 항일투쟁의 길을 나서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오금손 대위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당시 수도사단 백골부대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오금손 대위] 1950년 6월 26일,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 그리고 남쪽으로 계속 밀려 내려가는 제 18연대. 긴박했던 상황 속에서 오금손 대위와 23명의 간호사들은 계속되는 후퇴로 늘어나는 부상병들을 치료하며, 18연대와 함께 후퇴했다. 이 때 당시 그녀들은 입대자들에게 실시되는 기초 군사훈련도, 임관식도 받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그녀는 간호장교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동료들을 보살피며 전장을 지켰다. 쉽지 않았을 결단, 과연 무엇이 오금손 대위를 전쟁으로 향하게 했던 것일까? 이후 오금손 대위는 74살로 타계할 때까지 '백골할머니'라는 별명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렸다. [DMZ스토리 257부 군번 없는 나이팅게일, 오금손 대위] 조국 독립을 위해,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국가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불굴의 여전사! 오금손 대위를 에서 만나보자.

  • 256부 독도폭격, 일본의 위험한 계획

    방송일 201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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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을 틈타 국토 침탈을 꾀한 일본]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독도는 대한민국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기 어려운 지역이 돼 버렸다. 일본이 이런 호기를 놓칠 리 없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에는 시마네현 어업시험장 소속 시험선 ‘시마네마루’가 독도 영해를 침범했다. 그 해 6월에는 일본 수산시험선이 독도에 상륙해 ‘독도 조난 어민위령비’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의 나무말뚝을 박아 놓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 순시선이 수시로 독도 부근에 나타나 우리 어민의 조업을 방해하곤 했다. [독도를 빼앗기 위한 일본의 위험한 계획] 그러나 이 무렵, 위의 나열된 일본의 만행과는 비교도 안 될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일본이 독도를 빼앗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주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도발했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독도폭격!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독도에 무차별 폭격이 가해진 것. 그러나 처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8년에도 독도에 폭격이 있었다. 그로인해 무고한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DMZ에서 살펴본 독도폭격의 배후]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독도를 폭격한 건, 美 공군기였다. 도대체 왜, 美 공군은 독도를 폭격한 것일까? 美 공군이 독도를 폭격하는데 일본은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