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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사북.6> 사북항쟁, 완전한 진실 규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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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사북항쟁에 대한 진실 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가 한 차례 조사는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피해 확인이 이뤄지지 않다보니 여전히 피해자로 인정 받지 못한 광부와 가족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어서 최돈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터]
1980년 4월, 집으로 와야 할 아버지가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며칠 뒤 돌아온 아버지는 만신창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몸과 마음의 상처가 선명했지만, 자신에게 붙은 '빨갱이' 딱지가 가족에게 피해를 줄까 두려워 그 뒤로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말씀을 안 하시니까 제가 압니까. 저는 목욕탕 가서 본 것 밖에 없으니까 아버지에 대한 몸상태를, 92년도이니까 아예 생각도 못하고 돌아가신거죠."

[리포터]
아들은 반 평생이 지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나중에 들은 게 동명이인이고 그것도 누가 고발했는지 너 불어라 얘기하면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리포터]
계엄군에 끌려갔다 20여 일 만에 돌아온 구정우씨.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 기억은 여전히 악몽입니다.

[인터뷰]
"사북에서 고문을 많이 당해서 사람이 타락해서 정신이 없고 하니 찾을 수도 없고 어디가서 하소연하고 억울한 걸 밝혀야되나.."

[리포터]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8년, 사북항쟁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인권침해를 인정했습니다.

사건 발생 30여 년 만에 거둔 가시적인 성과였지만, 조사권 부족과 자료 왜곡 등의 한계도 드러냈습니다.

당시 조사는 공소장이나 재판 기록 같은 피해 입증이 비교적 명확한 자료 중심이었고,

피해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 등 조사 범위나 방식이 광범위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김씨나 구씨처럼 정황은 확실하지만 피해자로 인정 받지 못한 광부와 가족이 수두룩합니다.

[인터뷰]
"(가장 안타까운 점이)잡혀가서 공권력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고초를 겪고 그냥 풀려난 경우예요. 그런 경우가 너무 많아요. 재판까지 간 사람이 28명이니까 그 10배가 넘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어요. 이 사건 관련성을 인정 받을 방법이 없어요."

[리포터]
/출범 2년을 앞두고 있는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조사 신청 건수는 만 천6백여 건,/

/이중 사북항쟁 피해자는 19명입니다./



"완전한 진실 규명을 위해선 하루 빨리 국가 차원의 직권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입니다."
G1뉴스 최돈희입니다.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
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최돈희 기자 tweetism@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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