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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4> 격렬했던 '화천' '홍천' 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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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도내 독립 운동사를 살펴보는 기획보도 순서.

오늘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이름이 적힌 깃발을 당당히 내건 화천과,

인부를 가장해 대규모 시위를 벌인 홍천 만세운동을 홍서표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터]
1919년 독립만세운동 현장에는 어김없이 일제의 총칼이 시위대를 향했습니다.

서슬 퍼런 일제의 탄압에도 독립 운동가들은 꿋꿋하게 대항했습니다.

화천지역의 만세운동도 당당했습니다.

시위를 주도하는 대표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기를 만들어 독립만세 깃발과 함께 전면에 들고 나섰습니다.

[인터뷰]
"대한독립만세라는 기하고 다음에 화천 면민단 대표 김창의, 이은규라는 자기 이름 석 자를 내걸고 목숨 걸고 그렇게 3.1 만세운동을 한.."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항한 겁니다.

결국 화천 만세운동은 4명이 숨지고 175명이 검거되는 등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습니다.

홍천 만세운동에선 선조들의 지혜가 빛났습니다.

당시 일제는 홍천과 인제를 연결하는 신작로 공사에 주민들을 동원했는데,

작업을 하던 주민들이 4월1일 홍천장터에서 시위대로 돌변해 일제에 항거했습니다.

[인터뷰]
"삽이라든가 곡괭이라든가 이런 도로공사를 하기 위한 채비를 가지고 홍천시장에 모여 가지고, 군청을 향해 가면서 만세운동을 벌인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stand-up▶
"100년 전 이곳 장터에서 삼삼오오 모인 홍천 군민들은 수백 명의 군중이 되어 홍천군청과 홍천면사무소로 쳐들어갔지만, 군수와 면장은 모두 도망친 뒤였습니다."

이어 4월3일에는 물걸리에서 또다시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고, 이곳에서만 8명이 현장에서 일제의 총탄에 희생됐습니다.

홍천 물걸리 주민들은 지난 1963년 자발적으로 기념비를 세우고, 8인의 독립 영웅을 기리고 있습니다.
G1뉴스 홍서표입니다.
홍서표 기자 hsp@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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