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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독립.5> 방치된 독립운동..관심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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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애국 지사들이 나라의 독립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강원의 독립운동사를 되새기고 계승하는 일이 중요한데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3.1운동 100주년 기획보도,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도내 독립운동 사적지가 방치돼 있고, 독립 운동 사료도 허술하게 정리돼 있는 실태를 취재했습니다.
홍서표 기자입니다.


[리포터]
양양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됐던 본거지는 양양읍 임천리입니다.

양양시내에서 2km도 채 안 되는 곳으로, 1919년 4월4일 당시 대규모 양양장터 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했던 마을입니다.

/하지만 독립기념관과 강원도사 등에 양양독립운동 본거지로 소개된 이교완 선생의 집터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자료에 나와 있는 집터의 위치와 주민들이 얘기하는 장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거기에다가 회사가 창고 짓고 있잖아. 거기여 그러니까) 거기여 거기. 저기는 아니야. 내가 아는데 뭘"

같은 마을이긴 하지만 정확한 집터 위치는 다르다는 겁니다.

강원도는 도사를 만들 때 기존 자료를 활용해 정리할 뿐,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자료에 오류가 있어도, 계속 틀린 자료가 사용된다는 얘깁니다.

사적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stand-up▶
"홍천을 대표하는 독립 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만든 이 기념비는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돼 있어 어디에 있는지 찾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야 도로공사를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수풀로 뒤덮인 채 발견된 게 그마나 다행입니다.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양양 이안성 선생의 독립운동을 기리기 위해 과거 양양군수와 군의장 등이 함께 건립한 기념비도 방치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뷰]
"독립운동 사적지가 제대로 조명되고 위치 보정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명확하게 잘 되어 있지도 못 합니다."

정확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애국지사들도 빨리 찾아야 합니다.

독립운동 100주년의 진정한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거창한 행사뿐만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애국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계승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G1뉴스 홍서표입니다.
홍서표 기자 hsp@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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