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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각 주요 뉴스] 춘천이궁, 고종황제의 사라진 궁궐
  • 송혜림 기자 (shr@g1tv.co.kr)
  • 작성일 : 2019년 08월 14일 조회수 :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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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의 강원도청이 조선말 이궁이 있었던 자리라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이궁은 임금이 지방을 방문할 때 묵던 곳이어서, 최근 강원도의 역사적 자존감을 살리는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는데요,

G1 강원민방은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이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보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마련했습니다.

내일(15일) 방영에 앞서,

이궁의 역사적 배경을 송혜림 기자가 설명해 드립니다.


[리포터]
1890년대 후반.

지금의 춘천시 중앙로 강원도청이 있는 자리에 '춘천 이궁'이 조성됐습니다.

'이궁'은, 임금이 바깥으로 나들이 할 때 머무르던 공간을 말합니다.

도청 내 '위봉문'은 당시 이궁의 대문이었고, 다락으로 쓰였던 조양루를 비롯해, 임금이 잠을 자던 침전인 '문소각' 등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조선시대 때에는 유수로 지정된 곳은 국가적으로 볼 때 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도시를 유수부로 지정을 해서 관리를 했습니다./ 춘천이 유수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일단은 기존에 관찰사에 소속된 8도에 속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중앙정부에 직접, 직할된 소속으로 바뀌는 것이 있고요."

하지만, 1907년 일제강점기에, 대한제국 친위대가 해산되고 일본군 수비대를 춘천에 배치하면서부터 이궁이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급기야 일본이 이 일대에 춘천 신사를 지으면서 주요 건물들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사라져 갔습니다.

[인터뷰]
"춘천 신사로 진입하려고 하면 도로가 있어야 되니까, 도로를 만드려고 하면 춘천 관아를, 지나서 가는게 가장 접근성이 좋고 가까우니까, 부득불 관아 건물들이 도로에 저해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관아건물들을 훼손했을 수도 있다라고 볼 수 있죠."

시련을 겪던 이궁은 1940년 결국 화재로 전소됐습니다.

기록으로만 남아있을지라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선 말, 굳건히 제 소임을 다 하고 있던 춘천 이궁.

G1 강원민방에서는 이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로
'춘천이궁 - 고종황제의 사라진 궁궐'을 오는

내일 밤 11시 10분에 방영할 예정입니다.
G1뉴스 송혜림입니다.